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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으실 본문은 고린도후서 6장 1절에서 시작합니다. (현재 '원문순서'입니다.)
헷 (히타이트) 족속
(다음은 출처에서 일부 발췌한 내용입니다.)
- ‘헷’ 은 함의 아들 가나안의 아들 중 한 명입니다.
- 성경에 등장하는 ‘헷’ 족속이 세계사에 등장하는 ‘히타이트’ 민족입니다. 헷족(Heth)을 히타이트로 보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헷족이 왜 히타이트로 되었을까? 이희철 선생은 저서 <히타이트>에서 다음과 같이 결론을 내렸습니다.
"언어 판독학자들이 구약 성서 및 히브리어 성서에 기록된 헷족과 히티(Hitti), 히티의 복수형인 히팀(Hittim)을 근거로 각국의 언어로 번역하는 과정에서 헷족이나 히티와 히팀이 히타이트로 둔갑하게 되었다. 독일어로는 헤티에르(Hethiter), 영어로는 히타이트(Hittites), 불어로는 히티트(Hittites), 이태리어로는 이티티(Ittiti)로 번역되었다."
'히타이트는 구약에 나오는 헷족의 번역 과정에서 자연스럽게 생겨난 말이다'는 것입니다.
- 세계사에서 소개하는 갑자기 소멸한 수수게끼 민족 ‘히타이트’
기원전 18세기경, 쿠샤라 왕 아나타스가 카파도키아 고원을 정복하였다.
히타이트 고왕국(古王國)의 조상은 라발나스인데, 그 아들 하투실리스는 하투사스를 수도로 정했다.
무르실리스 1세(Mur-silis Ⅰ, 기원전 1624~기원전 1594?)는 북시리아를 정복, 바빌론을 공략했다.
신왕국의 시조는 투드하리야스 2세로서 수필룰리우마스 1세(Suppiluliumas Ⅰ, 기원전 1380~기원전 1340?) 시대에 히타이트의 판도는 가장 커졌다.
히타이트인은 소아시아의 지배를 강화하여 미탄니를 속국으로 하고, 북시리아를 세력 아래에 흡수, 이집트 다음가는 대국이 되었다.
무와탈리스는 이집트의 왕 람세스 2세의 군대와 카데시에서 싸워서 격퇴했다(기원전 1286).
하투실리스 2세는 이집트와 화약(和約)을 맺어(기원전 1269) 오리엔트에는 평화가 찾아왔다.
그러나 동편에서는 아시리아에게 압박되고, 소아시아 서부에서는 프뤼기아가 대두하여, 그리스계 해상 민족의 침입으로 기원전 1180년 히타이트는 멸망했다.
- 최초로 철기 문명을 사용한 민족으로 알려져 있다.
- 1000년 가까이 지금의 터키 지역에서 문명이 발달하다가 갑자기 멸망하여 200년전 까지 그 흔적도 찾지 못했던 민족이다.
- 고고학이 처음 태동 되었을때 성경에 나오는 헷 족속이 세계사에 그 흔적이 보이지 않아서 성경의 역사성이 의심을 받은적이 있으나 헷 족속의 흔적을 발견 하게 됨으로 해서 성경이 고고학적으로 역사적 사실임을 밝혀 주는 중요한 민족 중 하나가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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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나안에 정착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수아 선지자 사망 이후에 더 이상 가나안의 남은 부분들을 정복하지 않았습니다. 더 나아가 남은 가나안 족속들과 타협하고 타락해 가기 시작했습니다.
토지 분배로 이스라엘의 힘은 분산 되었습니다.
광야 생활을 하며 하나님의 큰 역사들을 보았던 사람들은 모두 세상을 떠났습니다.
모세 선지자가 후계자로 여호수아 선지자를 세웠지만, 여호수아 선지자는 후계자를 세우지 않았습니다.
7년마다 초막절에 율법을 낭독하라고 했던 모세 선지자의 명령이 지켜지지 않았고,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아는 지식으로부터 점점 멀어져 갔습니다.
여호수아 선지자 이후 타락 해 가는 이스라엘을 위해 사사를 보내 주셨습니다.
사사는 평화시에는 정치, 사회, 종교계의 지도자 역할을, 전쟁시에는 백성들을 구해내는 군사 지도자 역할을 수행하였습니다.
옷니엘 사사부터 삼손 사사까지의 이야기가 펼쳐집니다.
사사시대를 보여주는 반복 되는 말씀이 있습니다.
"또 여호와의 목전에 악을 행하여 ... 일을 했더라"
[표] 사사기 권 구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