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1독 기준일자는 1년 동안 성경 전체를 1독하고자 할 때 현재 본문을 읽으실 날짜를 말합니다. 즉 기준일자에 맞추어서 성경 본문을 읽으시면 1년에 1독을 하실 수 있습니다.
오늘 읽으실 본문은 요한계시록 13장 1절에서 시작합니다. (현재 '원문순서'입니다.)
안식일(安息日, Sabbath)
유대인들이 휴일로 지키는 토요일을 말하며, 히브리어 샤밧(shsbath)은 ‘쉬다’ 도는 ‘중지하다’라는 뜻을 어근으로 한다. 안식일의 기원은 하나님께서 6일 간 창조하시고 칠일째 날에 안식하신 것에서 유래한다(창 2:1-3). 특별히 안식일은 하나님께서 사람을 위해 만드신 것으로, 이 날은 영적이고 정신적인 필요는 물론 우리의 전인적이며 신체적인 요구까지 충족되는 날이었다(출 23:10-12; 막 2:27). 모세는 시내 산으로 가는 도중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안식일을 거룩한 날로 지키라고 명령했다(출 16:23). 안식일 준수는 하나님의 명령이었을 뿐 아니라 안식일을 범할 경우엔 돌로 쳐서 죽였으며(민 15:32-36), 선지서에도 안식일을 지키라고 명령하고 있다(사 56:2; 렘 17:19-27; 겔 44:24).
안식일의 의미:
거룩한 휴식의 날인 안식일은 이스라엘의 세대를 거쳐 그들이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라는 정체성을 확립하는 데 도움을 주었다. 안식일은 창조사역의 일곱 번째 날일 뿐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의 땅에서 구원하신 일을 기념하는 날이었다(신 5:15). 또 안식일은 하나님과 이스라엘이 언약 관계에 있음을 상징하여, 안식일을 준수하느냐의 여부가 곧 하나님에 대한 이스라엘의 헌신의 척도가 되었다(출 31:12-17; 사 58:13-14). 이스라엘 백성들은 노동으로부터 휴식하는 것을 통해 안식일을 준수했기 때문에 안식일에는 종이나 집안의 짐승까지도 일을 해서는 안되었다(출 23:10-12).
예수님과 안식일:
히브리 구전 율법서인 미쉬나에는 안식일에 해서는 안되는 39가지의 일들이 열거되어 있다. 밭갈이, 파종, 수확, 건물을 짓거나 부수는 일, 방직, 바느질, 사냥, 도살, 망치질, 요리, 빵 굽는 일, 글 쓰는 일, 불을 켜거나 끄는 일 등이다. 이것들은 토라로부터의 합리적인 추론에 의해 정해진 것들이지만 점차 더 많은 제재들을 부가하여 율법을 확장시키려는 경향이 강해졌다. 이렇듯 안식일에 대해 예수님과 견해를 달리한 바리새인들은 점차 예수님과의 갈등이 심화되었다(참고, 마 12:12; 막 2:27:눅 13:16). 예를 들어 바리새인들은 병 고치는 일, 길가 밀밭의 이삭을 잘라 먹는 일도 안식일에 해서는 안되는 일로 여겼다(마 12:1-14; 눅 13:10-16). 하지만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휴식을 주기 위해 안식일을 만들었으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은 합법적이라고 응수하셨다(마 12:12).
예수님은 제사장들은 성전 안에서 안식일을 범해도 죄가 되지 않음을 들어(레 24:8-9) 성전에서는 안식일을 범해도 죄가 되지 않을 만큼 높은 권위가 있지만, 예수님에게는 성전보다 더 큰 권위가 있다고 하셨다(마 12:6).
또한 안식일의 참된 정신은 제사가 아니라 자비라고 하시며, 안식일의 근본 정신이 하나님의 자비와 긍휼의 마음이 전달되는 데 있음을 밝히셨다(마 12:7). 그리고 자신이 안식일의 주인임을 말씀하시면서(마 12:8) 안식일을 지키는 것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한 것이지 그 자체가 목적이 아님을 말씀해 주셨다.
출처:두란노 비전성경사전
세례(洗禮, Baptism)
물 속에 들어가는(물 뿌림) 의식을 말하는데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죄에 대해 죽고 예수 그리스도의 새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서(롬 6:3-5) 그리스도와 연합함(갈 3:26-27)을 상징하는 의식을 말한다. 헬라어로는 ‘밥티스마’(baptisma)이며 이는 ‘잠그다’(왕하 5:14; 시 68:23) ‘씻는다’(막 7:4; 눅 11:38; 딛 3:5), 비유적으로 쓰여 ‘온몸에 충만시킨다’(마 3:11)는 의미로도 쓰였다.
세례는 물 속에 들어가는 것(물 뿌림)을 통해 옛 사람이 죽고, 죄를 씻고 물에서 나옴으로써 예수님과 함께 부활, 연합하는 것을 상징하는 예식이다. 따라서 세례는 성도가 그리스도 안으로 접목되었다는 것, 은혜의 언약의 모든 유익에 성도가 참여하게 되었다는 것, 그리고 성도가 주님의 것이 되었다는 것에 대한 하나의 표적이요, 인(印)인 것이다(고후 1:22; 갈 6:17).
바울은 세례를 통해 믿는 자의 죄가 씻겨지고(엡 5:26) 예수님과 연합하게 된다고 말했는데(롬 6:3-5) 이는 세례 자체에 어떤 죄사함의 능력이 있는 것을 말한 것은 아니다. 세례를 통해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밖으로 드러내어 공동체의 일원으로 인정받음으로써 믿는 자가 그리스도 공동체의 일원으로 새롭게 살아갈 것을 약속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후 1:22; 엡 1:13; 4:30).
이 예식이 교회 안에 자리잡게 된 것은 예수님의 명령에 따른 것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복음 전파의 명령과 함께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믿는 자들에게 세례를 주라고 명령하셨다(마 28:19).
세례의 역사적 기원:
세례에 대한 역사적인 배경은 구약의 결례에서 먼저 찾아볼 수 있다. 구약의 헬라어 역인 70인역은 의식적인 정결을 위하여 율법에서 요구된 물로 씻거나 정결하게 하는 ‘정결 예법’을 ‘깨끗하게 한다, 씻는다’는 뜻을 가진 ‘밥티조’(baptiso)라는 말로 사용하였다(출 30:17-21; 레 11:25; 민 19:17).
세례의 배경은 유대교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이 유대교로 개종할 경우 그들에게 할례를 주었다. 그 후 할례 받은 상처가 나을 경우 그를 데리고 흐르는 물에 가서 물 가운데 세우고 율법을 읽어주었다. 그리고 축도를 하고 그를 물에 잠기게 한 후 그가 물에서 올라오면 그는 완전한 유대교인으로 새롭게 되는 것이었다. 또 요한의 세례도 기독교 세례의 또 하나의 기원이 된다. 요한의 세례는 단순히 의식적인 결례만은 아니었다. 요한은 세례를 메시아의 임박한 오심을 대망하는 가운데 회개와 하나님의 법들에 대한 헌신을 상징하는 공적인 행위로써 소개하였다. 요한의 세례는 회개와 죄를 자복하는 세례였으며 오실 메시아를 준비하는 세례였다.
성경에는 예수님이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었다는 기록은 없다. 예수님은 요한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요단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다(마 3:13-16).
신약의 기자들은 세례의 배경을 이루는 구약적인 사건인 노아 홍수 사건(벧전 3:20- 21), 홍해 사건(고전 10:2), 할례 의식(골 2:11-12) 등에서도 세례의 상징적인 의미를 말하고 있다.
세례에 대한 기독교의 전통적인 관점들:
물 세례에 대한 세 가지 중요한 관점들이 있다. 첫째로 성례적인 관점은 세례를 은혜의 수단으로 보는 것으로, 그것을 행함으로써 죄들의 용서와 새 생활이 오며(가톨릭의 견해), 또는 말씀의 전파로 인해 힘을 발휘하게 될 믿음이 심기는 도구로도 본다(루터교).
둘째는 개혁 개신교 교회들이 따르고 있는 언약적인 관점이다. 물 세례를 구약의 할례와 같이 하나님과의 언약적인 관계에 대한 표로 본다. 세례는 개인들을 교회로 처음 인도할 뿐 아니라, 구속에 이르게 하는 은혜의 표와 인침을 상징하는 것으로 본다.
셋째는 상징적인 관점인데 물 세례는 그리스도를 구주로 공적인 고백을 하는 것으로 본다. 처음 두 관점을 따르는 자들은 유아 세례를 행하지만 세 번째 관점을 가진 사람들은 세례는 사람이 오직 그리스도에게 믿음을 인격적으로 고백할 수 있는 정도의 연령이 되었을 때에만 합당하다고 주장한다.
세례에 대한 대표적인 성경 구절들
1. “그는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요”(마 3:11):
여기서 불로 세례를 주는 것은 보통 불신자들에게 임할 마지막 심판에 대한 언급으로 보기도 한다(마 3:12). 그러나 어떤 학자들은 신자들 위에 머물렀던 ‘불의 혀들’(행 2:3)로 오순절에 나타났던 신자들을 정결케 하는 성령의 역사에 대한 언급으로 본다.
2. “내가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마 3:14):
요한은 예수님이 자신에게 세례를 받으시려 할 때 처음에는 거절하였다. 그러나 예수님의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마 3:15)는 말씀은 세례 요한을 감동시켰다. 이것은 예수님이 회개할 죄를 가지셨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은 이같은 방법으로 요한의 메시지와 견해를 같이한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표명한다는 의미이다.
3. “너희가 나의 받는 세례를 받을 수 있느냐”(막 10:38-39) :
예수님은 두 제자에게 “너희가 나의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나의 받는 세례를 받을 수 있느냐”(막 10:38)라고 물으셨다. 이것은 예수님이 장차 경험하게 될 십자가 처형의 고통에 그들도 진심으로 참여할 수 있는지를 물어보신 것이다.
4. “모세에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고전 10:2):
출애굽 시 애굽을 떠났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모세에게 세례를 받았다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기적적인 행동들을 통하여 모세의 지도력 하에 한 백성으로 함께 인도함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5.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벧전 3:21상):
베드로는 성도가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되는 영적인 세례와 노아의 경험을 유추하여 말하고 있다. 방주가 심판의 물 속에서 노아를 구해 주고 그를 새로운 세계에 두도록 한 것같이 예수님과 우리들의 연합(세례를 통하여 상징화되고 인침을 받았던)을 통하여 성도를 하나님의 심판에서 안전하게 넘어가도록 인도해준다는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세례는 ‘인간의 악한 정욕대로’가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도록 새로운 영적인 세계로 이끈다는 것이다(벧전 4:2).
유아 세례에 대하여:
유아 세례에 대한 의견은 기독교의 교파간에 각각 그 견해를 달리하고 있지만 유아 세례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측의 견해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로 세례의 구약적 배경인 할례를 유아들에게 행했다는 것(창 17:12; 출 4:25-26; 레 12:3)과 신약의 기자가 세례를 할례와 연관시켜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골 2:11-12). 둘째는 신약에 나오는 구원의 초청에 아이들이 포함되어 있고(행 2:38-39) 어린아이를 포함하여 온 가족이 세례를 받은 예가 있다는 점이다(행 16:15, 32; 고전 1:16).
또한 예수님도 어린아이들을 축복하셨고(막 10:14-16) 유아 세례가 초대교회 때부터 실시되었다는 점에서 유아 세례의 정당성을 찾을 수 있다.
출처:두란노 비전성경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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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바울 사도의 1차, 2차, 3차, 로마행 전도 여행
누가는 데오빌로에게 '그 배운 바와 확실함을 알게 하려고'(누가복음 1:4)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을 기록했습니다.
데오빌로는 기독교로 개종한 이방인인데, 누가는 데오빌로로 대표되는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 그리스도교에 관한 보다 성숙한 가르침을 주기 위함이었습니다.
누가(Luke)
『인명』 <누가복음>ㆍ<사도행전>의 저자(?~?). 그리스의 의사로, 바울 사도의 동역자가 되어 여러 차례에 걸친 전도 여행에 그를 따라다녔다
출처: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성경 기록자로서의 누가
여러 정황을 미루어 볼 때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은 동일 인물에 의해 쓰여졌으며(눅 1:1-4; 행 1:1), 그는 바울 사도의 전도 여행에 함께 참여했던 동역자 누가였음이 분명하다(몬 24). 초대교회와 교부들(이레니우스, 순교자 저스틴, 클레멘트, 오리겐, 터툴리안 등)도 골로새서 4:14과 디모데후서 4:11 및 빌레몬서 24절에 나오는 의사 누가가 이 두 책의 저자라는 사실을 받아들였다.
한편 성경 기록자 누가는 이방인이었다. 그 근거로는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서 인용된 구약의 본문들은 모두 히브리 원문에서가 아니라 70인역에서 인용된 것이며, 또한 누가복음서에서 주님(Lord)이라는 말이 ‘랍비’로 되어 있지 않고 헬라어 명칭인 ‘디다스칼로스’(didaskalos; 선생)와 ‘에피스타테스’(epistates; 主, Master)로 되어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마태나 마가와는 달리 예수님이 하신 말씀 가운데 아람어를 사용하신 것을 기록하고 있지 않으며, 특히 유대인들에게서 흔히 발견하게 되는 배타주의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도 짐작할 수 있다.
또한 골로새서 4:10-14에서 바울 사도는 그의 동역자 가운데 아리스다고, 바나바의 생질 마가, 유스도라 하는 예수만이 유대인이었다고 말하고 난 후에 누가의 문안을 전함으로써 누가가 이방인 신자 가운데 한 사람이었음을 암시하고 있다. 그렇다면 누가는 신약성경의 저자들 가운데 유일한 이방인 저자인 셈이다.
의사로서의 누가
누가가 의사였다는 것은 바울 사도가 골로새 성도들에게 문안하는 편지에서 ‘사랑을 받는 의원 누가’라고 표현한 것에서 알 수 있으며(골 4:14),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에 나타난 의학 용어들을 살펴볼 때 그의 직업을 짐작할 수 있다(눅 4:48; 8:55; 행 28:8-9 등). 또한 바울 사도의 편지들을 볼 때 누가가 골로새 교회와 안면이 있었고, 빌레몬이나 디모데와도 친분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딤후 4:11).
누가는 바울 사도가 두 번에 걸쳐 로마 감옥에 투옥되었을 때도 빠짐없이 동행했는데(딤후 4:11), 특히 주의를 기울여야 할 점은 누가가 바울 사도에게 ‘사랑을 받는 의사’였다는 것이다(골 4:14).
출처:두란노 비전성경사전
‘사도들의 행적’이란 뜻을 지닌 신약 성경의 다섯 번째 성경입니다. 어떤 사본에는 단순히 ‘행적’이라고 적혀 있습니다.
사도행전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사도들과 사람들에 의해 예루살렘(행 1:1-7:60)에서부터 시작하여 유대와 사마리아(행 8:1-12:25)를 거쳐 이방 세계인 로마, 땅 끝까지(행 13:1-28:31) 전파되는 선교 역사를 기록한 책입니다. 그래서 사도행전은 선교행전이라고도 불립니다.
또한 복음은 사도들과 성도들에 의해 전파되었지만 이를 추진하는 원동력이 성령이라는 사실로써 사도행전은 성령행전이라고도 불립니다(행 2:1-13; 4:23-31; 5:1-11; 8:14-17; 10:44-48; 16:6-7; 19:1-6; 20:22-23, 28).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고 성령님이 오셨습니다.
성령님과 함께 하는 사도들의 복음전파가 시작 됩니다.
[표] 사도행전 권 구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