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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읽으실 본문은 민수기 1장 1절에서 시작합니다. (현재 '원문순서'입니다.)
세례(洗禮, Baptism)
물 속에 들어가는(물 뿌림) 의식을 말하는데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죄에 대해 죽고 예수 그리스도의 새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서(롬 6:3-5) 그리스도와 연합함(갈 3:26-27)을 상징하는 의식을 말한다. 헬라어로는 ‘밥티스마’(baptisma)이며 이는 ‘잠그다’(왕하 5:14; 시 68:23) ‘씻는다’(막 7:4; 눅 11:38; 딛 3:5), 비유적으로 쓰여 ‘온몸에 충만시킨다’(마 3:11)는 의미로도 쓰였다.
세례는 물 속에 들어가는 것(물 뿌림)을 통해 옛 사람이 죽고, 죄를 씻고 물에서 나옴으로써 예수님과 함께 부활, 연합하는 것을 상징하는 예식이다. 따라서 세례는 성도가 그리스도 안으로 접목되었다는 것, 은혜의 언약의 모든 유익에 성도가 참여하게 되었다는 것, 그리고 성도가 주님의 것이 되었다는 것에 대한 하나의 표적이요, 인(印)인 것이다(고후 1:22; 갈 6:17).
바울은 세례를 통해 믿는 자의 죄가 씻겨지고(엡 5:26) 예수님과 연합하게 된다고 말했는데(롬 6:3-5) 이는 세례 자체에 어떤 죄사함의 능력이 있는 것을 말한 것은 아니다. 세례를 통해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밖으로 드러내어 공동체의 일원으로 인정받음으로써 믿는 자가 그리스도 공동체의 일원으로 새롭게 살아갈 것을 약속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후 1:22; 엡 1:13; 4:30).
이 예식이 교회 안에 자리잡게 된 것은 예수님의 명령에 따른 것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복음 전파의 명령과 함께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믿는 자들에게 세례를 주라고 명령하셨다(마 28:19).
세례의 역사적 기원:
세례에 대한 역사적인 배경은 구약의 결례에서 먼저 찾아볼 수 있다. 구약의 헬라어 역인 70인역은 의식적인 정결을 위하여 율법에서 요구된 물로 씻거나 정결하게 하는 ‘정결 예법’을 ‘깨끗하게 한다, 씻는다’는 뜻을 가진 ‘밥티조’(baptiso)라는 말로 사용하였다(출 30:17-21; 레 11:25; 민 19:17).
세례의 배경은 유대교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이 유대교로 개종할 경우 그들에게 할례를 주었다. 그 후 할례 받은 상처가 나을 경우 그를 데리고 흐르는 물에 가서 물 가운데 세우고 율법을 읽어주었다. 그리고 축도를 하고 그를 물에 잠기게 한 후 그가 물에서 올라오면 그는 완전한 유대교인으로 새롭게 되는 것이었다. 또 요한의 세례도 기독교 세례의 또 하나의 기원이 된다. 요한의 세례는 단순히 의식적인 결례만은 아니었다. 요한은 세례를 메시아의 임박한 오심을 대망하는 가운데 회개와 하나님의 법들에 대한 헌신을 상징하는 공적인 행위로써 소개하였다. 요한의 세례는 회개와 죄를 자복하는 세례였으며 오실 메시아를 준비하는 세례였다.
성경에는 예수님이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었다는 기록은 없다. 예수님은 요한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요단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다(마 3:13-16).
신약의 기자들은 세례의 배경을 이루는 구약적인 사건인 노아 홍수 사건(벧전 3:20- 21), 홍해 사건(고전 10:2), 할례 의식(골 2:11-12) 등에서도 세례의 상징적인 의미를 말하고 있다.
세례에 대한 기독교의 전통적인 관점들:
물 세례에 대한 세 가지 중요한 관점들이 있다. 첫째로 성례적인 관점은 세례를 은혜의 수단으로 보는 것으로, 그것을 행함으로써 죄들의 용서와 새 생활이 오며(가톨릭의 견해), 또는 말씀의 전파로 인해 힘을 발휘하게 될 믿음이 심기는 도구로도 본다(루터교).
둘째는 개혁 개신교 교회들이 따르고 있는 언약적인 관점이다. 물 세례를 구약의 할례와 같이 하나님과의 언약적인 관계에 대한 표로 본다. 세례는 개인들을 교회로 처음 인도할 뿐 아니라, 구속에 이르게 하는 은혜의 표와 인침을 상징하는 것으로 본다.
셋째는 상징적인 관점인데 물 세례는 그리스도를 구주로 공적인 고백을 하는 것으로 본다. 처음 두 관점을 따르는 자들은 유아 세례를 행하지만 세 번째 관점을 가진 사람들은 세례는 사람이 오직 그리스도에게 믿음을 인격적으로 고백할 수 있는 정도의 연령이 되었을 때에만 합당하다고 주장한다.
세례에 대한 대표적인 성경 구절들
1. “그는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요”(마 3:11):
여기서 불로 세례를 주는 것은 보통 불신자들에게 임할 마지막 심판에 대한 언급으로 보기도 한다(마 3:12). 그러나 어떤 학자들은 신자들 위에 머물렀던 ‘불의 혀들’(행 2:3)로 오순절에 나타났던 신자들을 정결케 하는 성령의 역사에 대한 언급으로 본다.
2. “내가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마 3:14):
요한은 예수님이 자신에게 세례를 받으시려 할 때 처음에는 거절하였다. 그러나 예수님의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마 3:15)는 말씀은 세례 요한을 감동시켰다. 이것은 예수님이 회개할 죄를 가지셨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은 이같은 방법으로 요한의 메시지와 견해를 같이한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표명한다는 의미이다.
3. “너희가 나의 받는 세례를 받을 수 있느냐”(막 10:38-39) :
예수님은 두 제자에게 “너희가 나의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나의 받는 세례를 받을 수 있느냐”(막 10:38)라고 물으셨다. 이것은 예수님이 장차 경험하게 될 십자가 처형의 고통에 그들도 진심으로 참여할 수 있는지를 물어보신 것이다.
4. “모세에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고전 10:2):
출애굽 시 애굽을 떠났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모세에게 세례를 받았다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기적적인 행동들을 통하여 모세의 지도력 하에 한 백성으로 함께 인도함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5.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벧전 3:21상):
베드로는 성도가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되는 영적인 세례와 노아의 경험을 유추하여 말하고 있다. 방주가 심판의 물 속에서 노아를 구해 주고 그를 새로운 세계에 두도록 한 것같이 예수님과 우리들의 연합(세례를 통하여 상징화되고 인침을 받았던)을 통하여 성도를 하나님의 심판에서 안전하게 넘어가도록 인도해준다는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세례는 ‘인간의 악한 정욕대로’가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도록 새로운 영적인 세계로 이끈다는 것이다(벧전 4:2).
유아 세례에 대하여:
유아 세례에 대한 의견은 기독교의 교파간에 각각 그 견해를 달리하고 있지만 유아 세례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측의 견해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로 세례의 구약적 배경인 할례를 유아들에게 행했다는 것(창 17:12; 출 4:25-26; 레 12:3)과 신약의 기자가 세례를 할례와 연관시켜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골 2:11-12). 둘째는 신약에 나오는 구원의 초청에 아이들이 포함되어 있고(행 2:38-39) 어린아이를 포함하여 온 가족이 세례를 받은 예가 있다는 점이다(행 16:15, 32; 고전 1:16).
또한 예수님도 어린아이들을 축복하셨고(막 10:14-16) 유아 세례가 초대교회 때부터 실시되었다는 점에서 유아 세례의 정당성을 찾을 수 있다.
출처:두란노 비전성경사전
65% (마가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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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갈릴리 가버나움
유다는 거의 약탈에 가까운 로마 제국의 세금 정책으로 인해 큰 괴로움을 당하고 있었으며, 이방 지역의 교회들도 네로 황제의 박해로 인해 환난과 순교를 당하고 있었습니다. 이에 사도들은 점차 사라져 갔으며 그리스도 예수의 사역과 교훈을 실제로 체험한 성도들도 희귀해져 갔습니다. 그러므로 안밖으로 어려움에 처한 교회에 신앙의 격려가 필요 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과 교훈을 기록하여 남겨 둘 필요가 있었습니다.
이 책은 하나님 아들이신 메시야 그리스도께서도 '고난의 종'으로 오셔서 고난받는 삶을 사셨으며 끝내는 하나님의 의와 권능으로 승리하여 부활 승천하게 되었다는 것을 강조함으로써 고난 중에 있는 성도들을 격려할 목적으로 기록 되었다고 할 수 있습니다.
마가복음을 기록한 사람으로, 유대인 본래 이름은 요한이다(행 12:12). 마가(Markos)는 로마식 이름이다. 사도행전에서 마가를 ‘마가라 하는 요한’이라고 부른 곳이 두 곳 있다(행 12:12, 25). 마가는 바나바 사도의 조카이기도 하다(골 4:10).
바울 사도의 동역자로서의 마가:
바울 사도는 예루살렘 부조를 마치면서 마가를 안디옥으로 데려갔다(행 12:25). 안디옥 교회에서 큰 신뢰를 얻은 마가는 바울 사도와 바나바 사도가 1차 전도여행을 떠날 때 바울 사도의 ‘수종자’로 동행하게 된다. 그러나 개인적인 문제로 인하여 밤빌리아의 버가에서 탈퇴하여 혼자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되었고(행 13:13), 이 사건은 나중에 바울 사도와 바나바 사도 사이의 분쟁의 불씨가 되었다. 제2차 전도여행 때 바나바 사도는 마가를 함께 데리고 가려 했으나 바울 사도는 이를 거절했다. 바나바 사도는 사람을 세우는 데 관심이 많았으며, 바울 사도는 사역을 이루는 데에 더 관심을 가지고 있었다.
결국 이 문제로 둘은 심히 다투었으며, 바울 사도는 실라를 데리고 소아시아로, 바나바 사도는 마가를 데리고 구브로로 전도여행을 떠났다(행 15:36-41). 그러나 나중에 마가는 다시 바울 사도에게서 인정을 받았다. 그는 로마에서 바울 사도와 함께 지냈으며, 바울 사도는 골로새 교회 성도들에게 마가를 기쁨으로 영접하라고 부탁했다(골 4:10).
그후 마가는 성숙한 신앙인이 되어 아리스다고와 유스도와 함께 하나님 나라를 위한 동역자가 되었으며 바울 사도는 마가에게서 진정한 위로를 발견했다(골 4:10-11). 바울 사도가 로마 감옥에 두 번째 투옥되었을 때 바울 사도는 마가를 그리워하여 디모데에게 마가를 데려올 것을 부탁했으며, 그를 가리켜 ‘나의 일에 유익한 자’라고까지 했다(딤후 4:11).
베드로 사도도 마가를 ‘내 아들 마가’(벧전 5:13)라고도 불렀다.
출처:두란노 비전성경사전
출처:두란노 비전성경사전
예수님의 생애를 가장 간결하면서도 박진감 넘치게 묘사하고 있습니다.
[표] 마가복음 권 구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