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 1독 기준일자는 1년 동안 성경 전체를 1독하고자 할 때 현재 본문을 읽으실 날짜를 말합니다. 즉 기준일자에 맞추어서 성경 본문을 읽으시면 1년에 1독을 하실 수 있습니다.
오늘 읽으실 본문은 민수기 1장 1절에서 시작합니다. (현재 '원문순서'입니다.)
유월절(逾越節, Passover)
유대의 3대 절기 중의 하나이다(신 16:1-7). 유월절은 히브리어 ‘페사흐’(pesach)에서 파생된 단어로 ‘넘어간다’는 의미이다(출 12:27). 출애굽 당시 하나님께서 애굽의 초태생은 모두 죽이셨으나 문설주에 피를 바른 이스라엘 백성들의 장자는 죽음을 면하게 하신 것을 기억하며 가족들과 함께 나누는 축제가 유월절이다(출 12:21-30). 이 축제는 7일간 지속되는데 공식적인 희생 제물을 드리며 개인은 누룩 없는 빵을 먹는다(출 12:15).
첫 번째 유월절:
모세는 이스라엘 회중에게 각 가족대로 첫 달 10일에 양을 취하라고 명령하였으며 (출 12:3-4) 14일 밤에 그 양을 잡아(출 12:6) 우슬초 묶음에 피를 적시어 집의 좌우 문설주와 인방에 바르고(출 12:7) 고기는 불에 구워 무교병과 쓴 나물과 먹고, 남은 것은 불에 태우도록 하였다(출 12:8-10). 그날 밤에 이집트 땅의 모든 첫 태생(장자로부터 옥에 갇힌 사람의 장자와 생축의 처음 난 것)은 죽었으나(출 12:29-30) 피로 표시를 해둔 이스라엘 사람들은 안전하였다. 바로는 그의 교만이 꺾여 한밤중에 모세와 아론을 불러서 “너희와 이스라엘 자손은 일어나 내 백성 가운데서 떠나서 너희의 말대로 가서 여호와를 섬기며 너희의 말대로 너희의 양도 소도 몰아가고 나를 위하여 축복하라(출 12:31-33)”고 명령하였다.
구약에 나오는 유월절들:
첫 유월절(출 12-13장), 출애굽 후 두 번째 유월절(민 9:1-14), 길갈에서 여호수아 시대의 유월절(수 5:10-12), 솔로몬의 유월절(왕상 9:25; 대하 8:13), 히스기야의 유월절(대하 30:1-27), 요시야의 유월절(대하 35:1-19), 스룹바벨의 유월절(스 6:19-22) 등이 있다.
신약의 유월절:
이스라엘 사람들은 해마다 유월절이 되면 예루살렘으로 갔고 예수님도 예외는 아니었다(눅 2:41-42). 제자들은 손수 유월절 준비를 하였고(막 14:16; 눅 22:8) 예수님은 유월절 식사로 마지막 만찬을 나누셨다(마 26:17-30; 막 14:12-26; 눅 22:7-20). 뿐만 아니라 예수님께서는 유월절 이틀 전에 제자들에게 자신이 십자가에 못 박히기 위하여 팔릴 것이라고 예고하셨으며(마 26:2), 예루살렘 성전 정화 사건(요 2:13-17)과 예수님이 빌라도에게 끌려가신 것은 유월절에 일어난 일이었다(요 18:28).
출처:두란노 비전성경사전
무교절(無酵節, Feast of Unleavened Bread)
유월절이 시작되는 저녁부터 7일 동안 무교병을 먹으며 지키는 절기를 말한다(출 12:15-20). 무교절과 유월절은 대개 구분없이 한 절기로, 엄밀하게 따지면 유월절은 아빕월(태양력 3-4월) 14일 저녁 어린 양 희생제사만을 가리키는 것이고 무교절은 유월절을 포함하여 일주일 동안 누룩없는 빵인 무교병을 먹으며 지키는 절기를 말한다.
무교절은 출애굽의 구원을 기념하며 감사하는 절기이다.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 40년 동안에도 이 절기를 지켰고(출 23:15; 34:18) 가나안에 들어가서도 계속 지켰다(수 5:11; 삿 6:19; 삼상 28:24; 왕하 23:9; 대상 23:29; 대하 8:13; 30:13-25; 스 6:22). 예수님과 그 당시도 지켰고(마 26:17; 막 14:1, 12; 눅 22:1, 7) 사도들 당시에도 지켰다(행 12:3; 20:6).
무교절에 해야 하는 일:
무교절에는 누룩을 집에서 없애야 했다(출 12:19). 그래서 누룩없는 무교병을 먹지 않고 유교병을 먹을 경우 하나님 앞에서 불결하고 거룩하지 못하기 때문에 백성 중에서 끊어지는 벌을 받았다(출 12:15, 19). 첫 날과 일곱째 날은 성회로 모였으며 노동을 금하였다(출 12:16; 레 23:7-8; 민 28:18, 25). 성회로 모일 때(민 28:17-25)는 흠없는 수송아지 2마리, 수양 1마리, 일년 된 숫양 7마리를 번제로 드렸으며 소제는 고운 가루에 기름을 섞어 드렸다. 또 속죄제물로 수염소 1마리를 상번제 외에 드렸다.
출처:두란노 비전성경사전
50% (에스라)
0% (전체)
에스라서는 포로 후기의 이스라엘 백성들을 위하여 하나님의 언약의 약속이 어떻게 성취되었는가를 기록한 것입니다.
바사(페르시아) 고레스 왕은 B.C. 539년 10월에 바벨론을 정복하였습니다. 그의 정책은 피정복 민족에게 자치권을 주어 통치하는 방식이었습니다. 따라서 그는 B.C. 538년에 칙령을 발표하여 유대인들로 하여금 고국으로 돌아가도록 허용하였습니다.
이 때 약 50,000명이 스룹바벨 총독의 인도하에 돌아왔고, 성전의 기초가 놓여졌습니다. 그러나 바사(페르시아) 다리오(다리우스) 왕의 통치하인 B.C. 515년까지 완성되지 못했습니다. 에스라 1~6장은 이 사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에스라 7~10장은 에스라 학사가 바사(페르시아) 아닥사스다 왕의 호의로 예루살렘으로 돌아와 백성들의 영적 회복 운동을 주도했던 일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스룹바벨 총독과 에스라 학사에 의해 각각 주도된 두 차례의 포로 귀환 사건을 이야기 하고 있습니다.
바사(페르시아) 고레스 왕이 유다 포로 귀환을 허락함으로써 스룹바벨 총독의 인도하에 귀환합니다. 귀환한 이스라엘 자손들은 성전과 성곽, 예루살렘 성읍 재건을 시작하였으나, 사마리아인들의 방해로 공사가 중단 됩니다.
학개 선지자와 스갸랴 선지자의 격려로 중단된 공사가 다시 시작되어서 성전이 완성 되었습니다. 성전 봉헌식을 올리고 유월절도 지켰습니다.
바사(페르시아) 아닥사스다 왕이 에스라 학사에게 예루살렘 귀환 명령을 내림으로, 에스라 학사가 사람들을 모아 예루살렘으로 돌아왔습니다. 에스라 학사가 먼저 돌아왔던 사람들의 잘못된 생활을 보고 이를 바로 잡기 위해 노력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