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28.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만나시고 사명을 주셨습니다
16열 한 제자가 갈릴리에 가서 예수의 명하시던 산에 이르러, 17예수를 뵈옵고 경배*(경배(敬拜)\n「1」존경하여 공손히 절함.\n「2」신령, 부처 등을 숭배함.\n「3」공경하여 절함의 뜻으로, 주로 한문 투의 편지글 끝에 쓰는 말.\n(출처: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하나 오히려 의심하는 자도 있더라. 18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예수님께서 오심으로 알 수 있었던 것 - 부활, 영생, 천국
1. 구약에서의 부활, 영생, 천국
[창세기 3:22] 여호와 하나님이 가라사대 "보라, 이 사람이 선악을 아는 일에 우리 중 하나 같이 되었으니, 그가 그 손을 들어 생명나무 실과도 따 먹고 영생할까 하노라." 하시고,
[다니엘 12:2] 땅의 티끌 가운데서 자는 자 중에 많이 깨어 영생을 얻는 자도 있겠고, 수욕을 받아서 무궁히 부끄러움을 입을 자도 있을 것이며,
[시편 133:3]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
2. 신약에서의 부활, 영생, 천국
[요한복음 3:3~17 (일부)]
3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5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6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7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8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를 들어도 어디서 오며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은 다 이러하니라."
"14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15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16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 17하나님이 그 아들을 세상에 보내신 것은 세상을 심판하려 하심이 아니요, 저로 말미암아 세상이 구원을 받게 하려 하심이라."
[베드로후서 1:3~6] 3그의 신기한 능력으로 생명과 경건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셨으니, 이는 자기의 영광과 덕으로써 우리를 부르신 자를 앎으로 말미암음이라. 4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로 정욕을 인하여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의 성품에 참예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으니, 5 이러므로 너희가 더욱 힘써 너희 믿음에 덕을, 덕에 지식을, 6지식에 절제를, 절제에 인내를, 인내에 경건을, 7경건에 형제 우애를, 형제 우애에 사랑을 공급하라.
[마태복음 22:29~30] 29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 고로 오해하였도다. 30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가고 시집도 아니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누가복음 20:34~36] 34예수께서 이르시되, "이 세상의 자녀들은 장가도 가고 시집도 가되, 35저 세상과 및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함을 얻기에 합당히 여김을 입은 자들은 장가가고 시집가는 일이 없으며, 36 저희는 다시 죽을 수도 없나니, 이는 천사와 동등이요, 부활의 자녀로서 하나님의 자녀임이니라.
[요한복음 5:25~29] 25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곧 이 때라. 듣는 자는 살아나리라. 26아버지께서 자기 속에 생명이 있음 같이 아들에게도 생명을 주어 그 속에 있게 하셨고, 27또 인자됨을 인하여 심판하는 권세를 주셨느니라. 28이를 기이히 여기지 말라. 무덤 속에 있는 자가 다 그의 음성을 들을 때가 오나니, 29 선한 일을 행한 자는 생명의 부활로, 악한 일을 행한 자는 심판의 부활로 나오리라. 30내가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듣는 대로 심판하노니, 나는 나의 원대로 하려 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원대로 하려는고로, 내 심판은 의로우니라.
[마태복음 4:17]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가라사대,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웠느니라." 하시더라.
[마태복음 28:18~20] 18예수께서 나아와 일러 가라사대,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19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를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세례를 주고, 20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
[사도행전 23:8] 이는 사두개인은 '부활도 없고, 천사도 없고, 영도 없다.' 하고, 바리새인은 '다 있다.' 함이라.
예수님께서 오셔서 이 모든 비밀이 다 밝히 드러나게 된 것입니다.
세례(洗禮, Baptism)
물 속에 들어가는(물 뿌림) 의식을 말하는데 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는 사람들이 그리스도와 함께 죄에 대해 죽고 예수 그리스도의 새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서(롬 6:3-5) 그리스도와 연합함(갈 3:26-27)을 상징하는 의식을 말한다. 헬라어로는 ‘밥티스마’(baptisma)이며 이는 ‘잠그다’(왕하 5:14; 시 68:23) ‘씻는다’(막 7:4; 눅 11:38; 딛 3:5), 비유적으로 쓰여 ‘온몸에 충만시킨다’(마 3:11)는 의미로도 쓰였다.
세례는 물 속에 들어가는 것(물 뿌림)을 통해 옛 사람이 죽고, 죄를 씻고 물에서 나옴으로써 예수님과 함께 부활, 연합하는 것을 상징하는 예식이다. 따라서 세례는 성도가 그리스도 안으로 접목되었다는 것, 은혜의 언약의 모든 유익에 성도가 참여하게 되었다는 것, 그리고 성도가 주님의 것이 되었다는 것에 대한 하나의 표적이요, 인(印)인 것이다(고후 1:22; 갈 6:17).
바울은 세례를 통해 믿는 자의 죄가 씻겨지고(엡 5:26) 예수님과 연합하게 된다고 말했는데(롬 6:3-5) 이는 세례 자체에 어떤 죄사함의 능력이 있는 것을 말한 것은 아니다. 세례를 통해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밖으로 드러내어 공동체의 일원으로 인정받음으로써 믿는 자가 그리스도 공동체의 일원으로 새롭게 살아갈 것을 약속한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고후 1:22; 엡 1:13; 4:30).
이 예식이 교회 안에 자리잡게 된 것은 예수님의 명령에 따른 것이다.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복음 전파의 명령과 함께 성부, 성자, 성령의 이름으로 믿는 자들에게 세례를 주라고 명령하셨다(마 28:19).
세례의 역사적 기원:
세례에 대한 역사적인 배경은 구약의 결례에서 먼저 찾아볼 수 있다. 구약의 헬라어 역인 70인역은 의식적인 정결을 위하여 율법에서 요구된 물로 씻거나 정결하게 하는 ‘정결 예법’을 ‘깨끗하게 한다, 씻는다’는 뜻을 가진 ‘밥티조’(baptiso)라는 말로 사용하였다(출 30:17-21; 레 11:25; 민 19:17).
세례의 배경은 유대교에서도 찾아볼 수 있다. 유대인들은 이방인들이 유대교로 개종할 경우 그들에게 할례를 주었다. 그 후 할례 받은 상처가 나을 경우 그를 데리고 흐르는 물에 가서 물 가운데 세우고 율법을 읽어주었다. 그리고 축도를 하고 그를 물에 잠기게 한 후 그가 물에서 올라오면 그는 완전한 유대교인으로 새롭게 되는 것이었다. 또 요한의 세례도 기독교 세례의 또 하나의 기원이 된다. 요한의 세례는 단순히 의식적인 결례만은 아니었다. 요한은 세례를 메시아의 임박한 오심을 대망하는 가운데 회개와 하나님의 법들에 대한 헌신을 상징하는 공적인 행위로써 소개하였다. 요한의 세례는 회개와 죄를 자복하는 세례였으며 오실 메시아를 준비하는 세례였다.
성경에는 예수님이 사람들에게 세례를 주었다는 기록은 없다. 예수님은 요한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요단강에서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셨다(마 3:13-16).
신약의 기자들은 세례의 배경을 이루는 구약적인 사건인 노아 홍수 사건(벧전 3:20- 21), 홍해 사건(고전 10:2), 할례 의식(골 2:11-12) 등에서도 세례의 상징적인 의미를 말하고 있다.
세례에 대한 기독교의 전통적인 관점들:
물 세례에 대한 세 가지 중요한 관점들이 있다. 첫째로 성례적인 관점은 세례를 은혜의 수단으로 보는 것으로, 그것을 행함으로써 죄들의 용서와 새 생활이 오며(가톨릭의 견해), 또는 말씀의 전파로 인해 힘을 발휘하게 될 믿음이 심기는 도구로도 본다(루터교).
둘째는 개혁 개신교 교회들이 따르고 있는 언약적인 관점이다. 물 세례를 구약의 할례와 같이 하나님과의 언약적인 관계에 대한 표로 본다. 세례는 개인들을 교회로 처음 인도할 뿐 아니라, 구속에 이르게 하는 은혜의 표와 인침을 상징하는 것으로 본다.
셋째는 상징적인 관점인데 물 세례는 그리스도를 구주로 공적인 고백을 하는 것으로 본다. 처음 두 관점을 따르는 자들은 유아 세례를 행하지만 세 번째 관점을 가진 사람들은 세례는 사람이 오직 그리스도에게 믿음을 인격적으로 고백할 수 있는 정도의 연령이 되었을 때에만 합당하다고 주장한다.
세례에 대한 대표적인 성경 구절들
1. “그는 성령과 불로 세례를 주실 것이요”(마 3:11):
여기서 불로 세례를 주는 것은 보통 불신자들에게 임할 마지막 심판에 대한 언급으로 보기도 한다(마 3:12). 그러나 어떤 학자들은 신자들 위에 머물렀던 ‘불의 혀들’(행 2:3)로 오순절에 나타났던 신자들을 정결케 하는 성령의 역사에 대한 언급으로 본다.
2. “내가 당신에게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당신이 내게로 오시나이까”(마 3:14):
요한은 예수님이 자신에게 세례를 받으시려 할 때 처음에는 거절하였다. 그러나 예수님의 “우리가 이와 같이 하여 모든 의를 이루는 것이 합당하니라”(마 3:15)는 말씀은 세례 요한을 감동시켰다. 이것은 예수님이 회개할 죄를 가지셨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은 이같은 방법으로 요한의 메시지와 견해를 같이한다는 것을 공식적으로 표명한다는 의미이다.
3. “너희가 나의 받는 세례를 받을 수 있느냐”(막 10:38-39) :
예수님은 두 제자에게 “너희가 나의 마시는 잔을 마시며 나의 받는 세례를 받을 수 있느냐”(막 10:38)라고 물으셨다. 이것은 예수님이 장차 경험하게 될 십자가 처형의 고통에 그들도 진심으로 참여할 수 있는지를 물어보신 것이다.
4. “모세에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고전 10:2):
출애굽 시 애굽을 떠났던 이스라엘 사람들이 모세에게 세례를 받았다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기적적인 행동들을 통하여 모세의 지도력 하에 한 백성으로 함께 인도함을 받았다는 것을 의미한다.
5. “물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 너희를 구원하는 표니 곧 세례라”(벧전 3:21상):
베드로는 성도가 그리스도와 연합하게 되는 영적인 세례와 노아의 경험을 유추하여 말하고 있다. 방주가 심판의 물 속에서 노아를 구해 주고 그를 새로운 세계에 두도록 한 것같이 예수님과 우리들의 연합(세례를 통하여 상징화되고 인침을 받았던)을 통하여 성도를 하나님의 심판에서 안전하게 넘어가도록 인도해준다는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세례는 ‘인간의 악한 정욕대로’가 아니라 오히려 하나님의 뜻대로 살아가도록 새로운 영적인 세계로 이끈다는 것이다(벧전 4:2).
유아 세례에 대하여:
유아 세례에 대한 의견은 기독교의 교파간에 각각 그 견해를 달리하고 있지만 유아 세례의 정당성을 주장하는 측의 견해를 살펴보면 다음과 같다.
첫째로 세례의 구약적 배경인 할례를 유아들에게 행했다는 것(창 17:12; 출 4:25-26; 레 12:3)과 신약의 기자가 세례를 할례와 연관시켜 말하고 있다는 점이다(골 2:11-12). 둘째는 신약에 나오는 구원의 초청에 아이들이 포함되어 있고(행 2:38-39) 어린아이를 포함하여 온 가족이 세례를 받은 예가 있다는 점이다(행 16:15, 32; 고전 1:16).
또한 예수님도 어린아이들을 축복하셨고(막 10:14-16) 유아 세례가 초대교회 때부터 실시되었다는 점에서 유아 세례의 정당성을 찾을 수 있다.
출처:두란노 비전성경사전
사도(Apostle)
일정한 사명을 위임받아 파견된 자를 말한다. 헬라어로는 ‘아포스톨로스’(apostolos)로 ‘보냄을 받은 자’란 뜻이다. 사도와 비슷한 뜻을 가진 히브리어 ‘샬리하’(shalicha)는 ‘하나님의 대리인’이란 의미로 쓰여 모세, 엘리야, 엘리사, 에스겔에게 사용되었다(출 6:11; 왕상 18:1).
예수님도 자신이 하나님에게 보냄을 받은 자라고 말씀하고 계시며(막 9:37; 요 13:20) 히브리서 기자도 예수님을 사도라고 칭하고 있다(히 3:1).
그렇지만 좁은 의미로는 예수님께 선택받아 복음을 전했던 12명의 제자들만을 제한하여 이르는 말이었다. 이들은 예수님께 친히 부름받아 예수님과 함께 지냈고 예수님의 권위를 부여받아 부활하신 예수님의 증인된 사명을 감당했던 사람들이었다(행 1:21-26).
후에는 바울도 자신을 사도라고 칭했는데(고전 9:1) 이는 그가 다메섹으로 가는 길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난 뒤(고전 15:8) 부활하신 주님을 증거하기 위해 부름받아 일하고 있었기 때문이다(고전 9:7-15). 바울은 자신이 증거하는 복음의 권위를 위해서 자신을 사도로 칭하는 것을 꺼리지 않았던 것이다.
이외에도 예수님의 형제 야고보(갈 1:19), 바나바(행 14:14), 안드로니고와 유니아(롬 16:7) 등도 사도라고 칭하였는데 이들 모두 부활하신 예수님의 명령을 따라(마 28:18-20) 복음을 전했던 사람들이었다. 이런 의미에서 볼 때 넓은 의미에서 사도는 그리스도의 전권대사로 복음을 전하고 가르치며, 전세계적인 믿음의 공동체를 형성하는 포괄적인 사명(마 28:19; 눅 24:48; 고전 1:17; 고후 5:20; 엡 6:20)을 부여받은 사람들을 말한다.
출처 : 두란노 비전성경사전
사도(使徒)
「명사」
「1」 거룩한 일을 위하여 헌신하는 사람.
「2」 『기독교』 예수가 복음을 널리 전하기 위하여 특별히 뽑은 열두 제자. 베드로, 안드레, 야고보, 요한, 빌립, 바돌로매, 도마, 마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다대오, 가나안의 시몬, 가룟 유다를 이른다.
출처: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