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자르 사전/여성판/남성판
지은이 : 밀로라드 파비치
옮긴이 : 신현철
펴낸곳 : 중앙M&B
펴낸날 : 1998.12.3
밀로라드 파비치
1929년 구 유고슬라비아의 베오그라드에서 태어났다. 연재 유고 연방의 베오그라드 대학 문학사 교수로 활동하고 있으며, 유고 연방에서 가장 사랑받는 시인 가운데 한 사람이다. 소설가로서는 호쾌한 상상력과 철학적 유머가 넘치는 작가로 동유럽 문학에 대한 인식을 한차원 높였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카자르 사전"은 밀로라드 파비치의 첫번째 장편소설이며 "콘스탄티노플에서의 마지막 사랑 Last Love in Constantinople", "차로 그려진 풍경 Landscape Painted with Tea" 등의 작품이 있다.
이 소설은 여성판과 남성판이 따로 있다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 비록 두 가지 판본은 모든 부분에서 거의 동일하고 결정적인 몇 구절만이 다를 뿐이지만 이 책에서 얻을 수 있는 마지막 재미이자 가장 결정적인 열쇠는 바로 거기에 있다. 그 구절이 어디인지, 그 차이로 인하여 작품 전체의 의미가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생각해 보는 것도 무척 흥미롭고 의미있는 일이 될 것이다. 더 나아가 좀더 혜안을 가진 독자라면, 독자 자신의 엄지손가락과 누군지 모를 그대의 엄지손가락이 스치는 순간, 우주가 열리고 미래와 과거를 볼 수 있을 것이다.
그 비밀에 대한 실마리는 아주 은밀하다. "카자르 사전"이 두 가지 판본을 가지고 있는 이유는 여성판이 아담의 몸을 나타내고 남성판은 아담의 피를 나타내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 각각의 책에 포획되어 있는 각 부분들이 살아 움직이기 위해서는 두 손가락, 즉 남성 손가락과 여성 손가락이 서로 맞닿아야만 한다. 그러므로 우리가 아담의 육신을 완성하고 그 육신의 일부가 되기 위해서 필요한 것은 오직 이 남성 손가락과 여성 손가락의 예언적 접촉뿐이다.
세계적인 베스트 셀러 "카자르 사전"은 한때 카프카스(코카서스) 지방에서 크게 세력을 떨쳤던 카자르인들에 관한 역사 미스터리 소설이며 국내 최초로 소개되는 소설이다.
"카자르"는 7~10세기 무렵에 걸쳐 카프카스 지역과, 흑해 북부의 볼가와 돈 강을 잇는 지역에 실존했던 역사상의 제국이었다. 이 국가는 강력한 조직력과 활발한 무역활동으로 동유럽 역사에 등장했던 가장 강력한 제국으로 평가되고 있다. 그러나 카자르 민족은 11세기 이후 역사의 무대에서 바람처럼 사라지고 만다.
작가는 카자르 민족의 이 신비스런 역사 중에서도, 특히 8~9세기 무렵 기독교와 유대교 그리고 이슬람교 사이에 벌여졌던, 이 민족의 개종을 둘러싼 논쟁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논쟁이 끝나자 카자르 민족의 군주 카간은 이 세 종교 가운데 하나로 개종했다고 한다. 그리고 그 개종으로 인하여 카자르 민족의 전통 종교나 언어는 완전히 사라지게 된다.
카간이 어느 종교로 개종했는지는 이 책에서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고 있다. 이 책은 어느 한 종교의 승리로 결론을 내리는 대신에, 각 종교에서 자신들이 논쟁에서 승리했다는 주장을 뒷받침하는 자료들을 제시한 세 가지 책을 모두 싣고 있다. 그것이 바로 레드 북(기독교)과 그린 북(이슬람교) 그리고 옐로 북(유대교)이다. 각 부분의 내용은 서로 다른 관점에서 해석됐기 때문에 똑같은 사건을 두고 정반대의 결론을 내리기도 한다.
전통적인 이야기 구성 방법으로부터 완전히 벗어나, 사전 소설이라는 장르를 개척한 이 작품은 기독교(레드 북), 이슬람교(그린 북), 유대교(옐로 북) 등 세계 3대 종교에 대한 소설로 종교 사전임과 동시에 과거와 미래를 넘나드는 환상적 이미지의 주인공과 주제들을 표제어와 그 해설로 담아 내고 있다. 이러한 독특한 구성을 배경으로 작가는 이 책의 독자들이 텍스트의 순서와 관계없이 마음 내키는 대로 읽어도 무방하다고 한다.
다른 책들이 저자의 서술 방식에 볼모로 사로잡혀서 닫힌 독서를 강요하고 있다면 이 책은 그야마로 자유분방한 의식의 흐름에 따라 독자들 마음대로 읽어 나가는 열린 독서의 길을 열어 놓고 있는 것이다. 작가는 기승전결이라는 전통적인 플롯의 구속을 과감하게 해체했듯이 시간과 공간이는 제약마저도 멋지게 벗어 던지고 있다. 그리고 반드시 처음과 끝이 있어야만 하나의 줄거리가 완성될 수 있다는 통념을 완전히 깨뜨린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