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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태복음 14장 1절 (개역한글판)
  8. 예수님의 계속 되는 활동

8.2. 예수님께서 세례 요한의 순교를 전해 들었습니다

 1그 때에 분봉왕 헤롯이 예수의 소문을 듣고 2그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는 세례 요한이라. 저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으니, 그러므로 이런 권능이 그 속에서 운동하는도다."
하더라.
 3전에 헤롯이 그 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의 일로 요한을 잡아 결박하여 옥에 가두었으니, 4이는 요한이 헤롯에게 말하되,
 "당신이 그 여자를 취한 것이 옳지 않다."
하였음이라. 5헤롯이 요한을 죽이려 하되, 민중이 저를 선지자로 여기므로 민중을 두려워하더니, 6마침 헤롯의 생일을 당하여 헤로디아의 딸이 연석*(연석(宴席)\n잔치를 베푸는 자리. ≒연회석.\n(출처:국립국어원 표준국어대사전)) 가운데서 춤을 추어 헤롯을 기쁘게 하니, 7헤롯이 맹세로 그에게,
 "무엇이든지 달라는대로 주겠다."
허락하거늘, 8그가 제 어미의 시킴을 듣고 가로되,
 "세례 요한의 머리를 소반에 담아 여기서 내게 주소서."
하니, 9왕이 근심하나 자기의 맹세한 것과 그 함께 앉은 사람들을 인하여
 "주라."
명하고, 10사람을 보내어 요한을 옥에서 목 베어, 11그 머리를 소반에 담아다가 그 여아에게 주니, 그가 제 어미에게 가져가니라.
 12요한의 제자들이 와서 시체를 가져다가 장사하고, 가서 예수께 고하니라. 관련구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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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 세례 요한의 죽음 (귀스타브 도레, Gustave Doré, 1865년)
【 참고자료 】
헤롯 집안 주요 인물 설명 (마태복음 14장 1절) +

헤롯(Herod)

  BC 55-AD 93년경까지 로마 황제를 대신하여 팔레스타인과 그 인접 지역을 다스리던 이두메 왕조의 왕들을 말한다. BC 1세기 초 알렉산더 얀네스(Alexander Jannes)에 의해 안티파테르(Antipater) 1세가 이두메의 통치자로 임명되면서 이두메 왕조가 시작되었다. 그리고 안티파스(Antipas, 안디바) 2세가 BC 47년 율리우스 케사르에 의해 유다 총독으로 임명되어 유다 지역을 다스리면서 헤롯 왕가의 통치가 시작되었다. 그는 한 아들인 파사엘에게는 예루살렘을 통치하도록 하였고 헤롯(헤롯대왕)에게는 갈릴리 총독 자리를 주었다.

헤롯 대왕(Herod the Great): 유아살해 명령을 내린 왕

  안티파스 2세의 둘째 아들로 BC 47년, 25세의 나이에 갈릴리 지역의 총독으로 임명되었다. 갈릴리 지역의 도둑떼를 소탕하며 하스몬 왕가의 안티고누스(Antigonus)가 갈릴리를 침입하였을 때도 그들을 물리치는 등 정치적인 능력이 뛰어났다. 아버지 안티파스가 암살당한 후 형 파사엘과 함께 유다의 분봉왕으로 임명되었으며 BC 40년에는 로마 황제 아구스도에 의해 유대인의 왕으로 임명되었다. BC 37년이 되어 예루살렘을 점령하고 있던 파르티아 군대와 안티고누스 왕을 물리치고 유대인의 왕위를 얻게 되었다.

  헤롯은 로마 정부와 유대인들과도 우호적인 관계를 유지하는 등 왕으로서의 정치적 수완을 보여 주었다. 지중해 연안에 항구 도시를 만들어 가이사 아구스도에게 경의를 표하기 위해 가이사랴라고 칭하기도 했으며, 사마리아와 여리고 같은 도시들을 재건하였고, 헬라 양식의 극장이나 원형 경기장 등과 같은 건축 사업도 활발히 수행하였다. BC 20년에는 예루살렘 성전 재건 사업을 시작하였는데 헤롯 성전이라고 불리는 이 성전은 그가 죽은 후 68년경에 완성되었다.

  헤롯은 순수한 유대인은 아니었다. 에돔 출신으로 선조가 개종하여 유대인이 된 반쪽짜리 유대인이었다. 그래서 그는 하스몬 왕가의 딸 마리암네와 결혼하여 유대인의 환심을 사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는 아주 잔혹하여 자신의 왕권을 노린다고 생각되는 사람은 가족도 예외없이 처단하였다. 그는 왕비 미리암의 남동생 아리스토불루스, 할아버지, 어머니, 왕비 미리암, 미리암의 두 아들을 차례로 죽였다. 예수님의 탄생 소식을 듣고 자신의 왕위를 지키기 위해 유아 살해 명령을 내리는 잔인함도 보였다(마 2:16-18).

  헤롯은 자신이 죽은 후 국가적인 애도 기간을 확실히 하고자 여리고에 있는 경기장에서 유대인 지도자들을 살해하라는 명령을 내렸고 BC 4년에 70세의 나이로 죽었다.

헤롯 안디바(안티파스): 세례 요한을 처형한 왕

  헤롯 대왕의 둘째 아들로 헤롯이 죽자 갈릴리와 베뢰아의 분봉왕이 되어 BC 4-AD 39년까지 다스렸다(눅 3:1). 성경에는 분봉왕 헤롯, 헤롯 왕으로 나온다(마 14:1; 막 6:14; 눅 3:19).

  그는 첫 번째 아내와 이혼하고 자신의 이복 형제인 빌립(헤롯 2세)의 아내이자 자신의 조카인 헤로디아와 다시 결혼하였다. 이것 때문에 세례 요한의 책망을 받게 되자(막 6:18) 그는 세례 요한을 옥에 가두었다(막 6:17). 헤롯은 세례 요한을 두려워하여 죽이지 못하다가 생일 잔치 자리에서 헤로디아의 딸의 요청을 듣고 세례 요한의 목을 베고 말았다(막 6:20-29). 그는 예수님으로부터 여우라는 말을 들었는데(눅 13:32) 이는 협박과 속임수에 능한 헤롯의 간사함과 교활함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것이었다.

  헤롯은 빌라도에 의해 호송되어온 예수님을 재판하였는데 예수님을 업신여기며 희롱한 후 다시 빌라도에게 넘겨 주었다(눅 23:7-11). 그는 갈릴리 해안에 로마 황제 티베리우스(Tiberius)의 이름을 따라 디베랴라는 도시를 건설하였으며 갈릴리 바다도 디베랴 바다라고 불렀다.

헤롯 아그립바 1세: 야고보 사도를 죽인 왕

  헤롯 대왕의 손자이며 아리스토불루스의 아들이다. 헤로디아의 형제이며 헤롯 안디바의 조카이기도 하다. 성경에서는 헤롯 왕으로 나온다(행 12:1).

  그는 로마 황실에서 교육을 받으며 자랐고 글라우디오(Claudius)가 로마 황제로 등극하는 데 공헌하여 유대와 사마리아를 통치할 권한을 부여받게 되었다. 또한 유대인의 환심을 사고자 율법을 존중하는 태도를 보여 지성소에 황제의 상을 세우지 못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사도행전 12장에 나오는 것처럼 요한의 형제 야고보를 죽였으며(행 12:2) 베드로를 옥에 가두는(행 12:3-5) 등 기독교인들을 핍박하였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지 않는 교만함으로 인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죽고 말았다(행 12:23).

헤롯 아그립바 2세: 사도 바울을 재판한 왕

  아그립바 1세의 아들이다. 그의 아버지가 죽었을 때는 17살의 어린 나이여서 부친이 다스리던 지역은 로마 총독이 다스리게 되었다. AD 50년에 칼키스(Chalcis)의 지역을 다스리는 왕이 되었으며 후에 갈릴리 지방의 분봉왕이 되었다. 그는 누이 버니게와의 근친 상간을 범하여 유대인들에게 지지를 받지 못했다. 가이사랴의 베스도에게 문안하러 갔을 때 구류되어 있는 사도 바울을 보게 되었으며(행 25:13-22) 바울의 변증을 듣게 되었다(행 26:1-29). 그는 바울의 변론을 듣고 바울에게서 죄를 찾을 수 없었지만 가이사에게 호소하였기 때문에 석방시킬 수 없다고 말하였다(행 26:30-32). 헤롯 왕가의 마지막 통치자로 70년 예루살렘이 정복되었을 때 로마로 가서 로마의 행정관이 되었으며 100년경에 죽었다.

출처:두란노 비전성경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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헤롯 집안의 주요 인물들 (마태복음 14장 1절) +